한국인에게 있어서 대추는 매우 친숙한 나무 중 하나이다. 시골 마을 어딜 가나 집집이 한두 그루의 대추나무가 있을 정도이다. ‘고려사’에 ‘대추를 보고 먹지 않으면 늙는다’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또한 옛 말에 양반은 대추 두 알만 먹어도 요기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추는 우리 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추나무는 양반나무라고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잎이 초여름 가까이 되어서 돋아나는 모습에서 여유로움과 서둘지 않는 점잖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부쳐졌으리라. 그리곤 이내 작은 꽃을 피우는가 싶으면 어느새 열매를 다닥다닥 매달고 있는 것이다. 잎만 늦게 날 뿐이지 열매가 여무는 것은 다른 나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결실은 치밀하게 산 자의 몫이니 치열하게 살아가는 한 방식이리라. 서양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지금까지도 전해오는 풍속 가운데 폐백이 있다. 시부모가 신부에게 대추를 던져주는 풍속도 아직 남아 있다. 다남(多男)의 상징물인 셈이다. 또한 대추는 하늘에든 조상에게든 제상에는 필수품이었다. 조동율서(棗東栗西)라 해서 제사 때 대추는 동쪽에 밤은 서쪽에 차린다. 홍동백서(紅東白西) 역시 그런 연유이다. 조율이시(棗栗梨柿)라 하여 대추, 밤, 배, 감, 순이다. 첫머리에 씨가 하나 뿐인 대추가 왕 격으로 으뜸이다. 씨가 3개인 밤은 영의정과 좌, 우 영의정, 6개인 배는 육조(六曹), 8개인 감은 팔도(八道), 팔방(八方)을 뜻한다 했다. 신선의 얼굴빛도 흔히 대춧빛으로 묘사한다. 황희의 시조에 ‘대추볼 붉은골에 밤은어이 떨어지며’에서처럼 대추는 생명력과 풍요를 상징한다. 대추의 붉고 하나뿐인 씨앗은 조상을 향한 후손들의 일편단심을 나타낸다. 가락국의 건국 신화에서도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왕옥이 김수로 왕을 만날 때 대추와 복숭아를 가져 왔다고 한다. 여기서 대추는 아들을 많이 낳으라는 소망을 상징한 것이라 하겠다. 옛 사람들의 부적이나 마스코트 만드는 재료로도 벼락맞은 대추나무를 최선으로 쳤다. 이는 천둥과 벼락의 힘이 깃들었다 하여 귀신이 무서워 달아난다고 믿었으며 행운의 상징으로도 여겼다. 보통 대추나무는 물에 뜨는데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물에 가라 앉는게 특징이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하늘의 기를 듬뿍 받았다 생각하며 벽조목이라 부른다. 허나 모든 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마음 먹기 달린 것 아니겠는가? 모로코의 한 부족의 종족은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대추 열매나 나뭇가지를 손에 쥐어 준다고 한다. 이는 외부의 공격이나 나쁜 일에 대하여 대추 가시와도 같은 방어능력을 부여해 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곳곳에 빚이 많거나, 일이 복잡하게 되어 갈 때 ‘대추나무에 연 걸린 듯’이란 말을 쓴다. 이 말은 아마 대추나무에 가시가 많기 때문에 연이 잘 걸린다는 연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추나무는 목재로도 이용되었는데 재질이 좋고 단단하여 떡메, 떡살을 비롯해 달구지, 목탁, 불상 등 공예품의 재료로 쓰였다. 오죽하면 모질고 굳센 사람을 대추나무 방망이라고 불렀을까? 우리는 흔히 쓰는 모순(矛盾)이라는 말이 있다. 창모(矛)와 방패 순(盾)이 어울려 생긴 말로 두 사실이 이치에 어긋나거나 말이 맞지 않을 때 사용한다. 모든 방패를 뚫는 창과 어떤 창이라도 막을 수 있는 방패처럼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경우나 서로가 상반된 역할을 하는 것을 뜻한다. 이 모순이 가장 단단한 나무로 불리는 대추나무로 만든 창과 방패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또한 대추나무 열매는 약방의 감초처럼 많은 약재에 이용되는 귀한 과일 중에 하나인 것이다. 팔월 한가위가 눈앞이다. 대추나무와 그 열매를 보면서 조상의 은덕을 기려 볼 일이다. 아득히 먼 선조로부터의 뿌리도 거슬러 올라가 볼 일이다.

“돌풍도 비켜가고/ 번개도 스쳐갔네/ 땡볕 더윈 또 어떻고/ 소낙비도 기다렸다오/ 가을 내내 목이 메인 채/ 붉디붉게 울었노라// 별빛도 담아보고/ 달빛도 우려내고/ 기쁨도 삼켜보고/ 아픔도 품에 안아/ 오늘이 종착역인 듯/ 붉디붉게 울었노라// 집 떠난 자식생각/ 가슴이 먹먹하다/ 강물은 예나 제나/ 천년 세월 유장한데/ 그 얼굴 떠올릴때마다/ 붉디붉게 울었노라”   (필자의 졸시 ‘대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