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형원장님의 시인 등단 시(월간문학세계 2012. 3)

○. 가을날의 차 한잔

노오란 산국 향기 가득한 가을담아

차를 달인다

피어나는 수증기 자락에

가을하늘 가득 들어서고

소슬한 가을바람에

갈대잎 서걱거림이 묻어들다.

황토빛 옹기 찻잔 속

전해오는 온기 있어

세파에 찌든 너와 나를

따스하게 감싸온다.

아, 나의 몸은 어느덧

황금빛 찻물로 물든다.

○. 어느날의 자화상

따뜻한 녹차한잔으로 입을 적시고

정좌하고 눈을 감으면

그간의 잊었던 얼굴들

잊었던 음성들

잊었던 시간들

잊었던 얘기들

스물스물 살아난다.

잊었던 번뇌도 깨어나고

잊었던 환희도 다가온다

세찬 바다바람에 저멀리 떠가는

만선의 깃발 펄럭거리듯

내안은 뜨거운 불꽃 일렁거리는

온통 핏빛 세상이다.

○. 연대도煙臺島* 그 섬에 가고 싶다

Ⅰ.하늘 끝자락까지 맞 닿아

내려온 아득한 그 곳

한려수도 수려한 풍광 한바탕의 섬.

떠나보낸 세월들이 안타까워 토해내는

영혼의 울음소리 해조음 가득한 섬.

검푸른 바다위로 건너가는

마다 하얀 그리움 밤낮없이 쏟아내는 섬.

일렁이는 물결 다둑거려 잠재워 놓고

노을 드리울 때 쯤 바다는 온통 통곡이 되어

선홍빛 아픔하나 안고 절창絶唱을 뿜어내는 섬.

밤되면 보석처럼 빛나는 별들이

잠든 수평선 너머로

이슬처럼 솟아오르는 섬.

외적의 침입 알리려 봉화* 올리던 기상 가득한

섬중턱 산자락에 펼쳐진 산죽山竹 스치는 바람소리

밤비 오는날 홀로 들어도

시리도록 아름답고

혼자 있을수록 외롭지 않은섬.

고단한 육신이 찾아가

소리없이 울 수 있는 가슴 속 영혼의 쉼터

삶의 무게가 느껴질수록 더욱 빛을 발하며 다가온다는 그 섬.

Ⅱ.마지막 희망의 생태 섬 에코랜드 그 섬에서

나 오늘은 취나물 방풍나물 훑고 가던

한려수도 천년의 해풍되어 쉬고 싶다

달빛 교교한 날

섬자락 빗겨도는 추억의 지겟길*도 걸어보고 싶다.

아롱아롱 진주 가득한

몽돌해수욕장* 절벽위

뿌리내린 천년노송에 걸터 앉은

초생달 벗을 삼아 퍼렇게 밤을 밝히고도 싶다.

신석기시대 패총*가를 서성거려 보면

하늘이 처음 열리던 까마득한 날

태고적 그 신비 그 선조들 만나보려나.

방파제 앞 좌대놓고 낚시줄 드리운채

무심삼매無心三昧한번 맛보고 싶다.

해안가 산책로 주변 갯바위를 종일

철썩철썩 훑고 가는 저 파도 소리 뒤로 하고

바람의 언덕*에 자리잡은 명상바위* 반석에 정좌한 채

우주의 숨소리도 듣고 싶다.

바다도 삼키고 사랑도 삼키려는

이 끝없는 욕망의 잉걸불 잠시 내려놓고

무한의 자유 가득한 연대도 그 섬에서

무상無常의 마음자리 안을 향해 걷고 싶다

저 넘어 세계를 보는 자만이 마음안에 담겨진

사랑도 본다고 하는 말 한 자락 부등켜 안고.

*연대도: 경남 통영시에 부속된 섬, 에코랜드 생태섬으로 유명.

*봉화 :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을 알리려 연기를 피워 봉화를 올렸던 봉화대가

산정상에 있음. 여기서 연대도라는 명칭이 붙었다함.

*추억의지겟길 : 섬가운데 있는 산자락을 따라 옛날 지게지고 가던 길이 펼쳐짐.

*몽돌해수욕장 : 주먹만큼한 고만고만한 몽돌들이 보석처럼 널려있는 해수욕장.

*신석기시대 패총 : 폐교된 초등학교 근처에 자리잡고 있음.

신석기 유물들이 출토됨.

*바람의 언덕 : 몽돌해수욕장 옆으로 펼쳐진 단애斷崖를 형성하고 있는 언덕.

*명상바위 : 바람의 언덕에 자리한 가로ㆍ세로ㆍ높이 각1m 가량의 평평한 반석, 앉기에 안성맞춤.

○. 내 사랑 독도

I.적멸의 땅

동해바다 끝에서 동도 서도 쌍무지개 떠 있다.

수억년 세월에 걸쳐 비바람과 풍랑이 빚은

걸작품들 품에 안고

망망대해에 일망무제로 솟아오른 너

장엄하다 독도여

흐르는 세월속에 상처투성이의 가슴

찢겨나가는 아픔도 설움도 묻고

강건하게 버티고 선 섬

억년의 함묵 속에서 진저리 쳐지는 외로움

잘도 견뎌 주었구나

우직한 홀로서기이다.

사랑스런 푸른넋이여

시퍼렇게 날 세워 온 밤을 뒤척이며

기나긴 인고의 시간

저 동해바다 험난한 물길질에

온몸은 속속들이 천공穿孔 숭숭

굳은살을 다 지었구나

백두대간 정기품은 구름도 쉬어가고

천지天池의 삭풍이 백록담 찾아가다 머물며 가는 섬

올곧은 한민족의 혼불 받들어

맨몸으로 우뚝 선 채

칼바람을 다 막으며

검푸른 동해바다를 서릿발 같은 기상으로 버티고 서 있는 너

결연한 몸짓이다

지난 격랑의 세월들 뒤로하고

심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영기靈氣 거대한 기장氣場 두른채

가부좌 틀고 앉아

묵언수행 선정禪定 에든 수행자의 형형한 눈빛

사유 하는 철인哲人 의 자태

독도는 그런 섬이다

Ⅱ.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우편번호 799-805

동경 131도 50분 북위 37도 14분에 위치한 동도 서도 89개 부속 바위섬

18만7천제곱미터 여의도 광장의 절반 면적

포항에서 262Km 울진에서 216Km 동해안 죽변에서 217Km 울릉도에서 88Km

떨어진 곳

경비대가 주둔해있는 동도에 놓여있는 빨간우체통하나

뭍을 향한 사연들에 독도 소인 찍힐 날 언제쯤일지?

삼봉도 우산도 가지도 바위섬 돌섬 석도 독섬 거쳐 독도라고 부른단다

동도 서도 아래 저 깊디 깊은 바다 속에는 울릉도와 백두대간을

한 몸 한 뼈로 삼 사천미터 묶고 있는 해중섬이 또 하나 있다지요

누가 보이는 것만 믿는다고 했던가요

보이지 않는 실상의 존재도 한번 쯤 반조返照 해 보시라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는데

이보다 더 깊은 근원 어디서 찾겠는가?

동해바다 외딴섬의 가없는 깊은 속내 그대는 느껴지는가?

그 막역함을 알겠는가?

Ⅲ.고독을 숙명처럼 받아들일 줄 아는 자들 여기 다 모였다.

하늘의 새들도 바위터 식물들도 곤충들도 바다 속 해조류도

이곳에선 모두가 형제 자매요 이웃이다

그 누구보다 돈독하게 서로의 어깨와 어깨 겯고

외로움을 나누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섬이다

괭이갈매기 재갈매기 바다쇠오리 바다제비 슴새 땅채송화 괭이밥 섬갯장대 해국

왕호장근 섬기린초 오징어 명태 대구 참돔 고래 미역 파래 멍게 해삼 전복 모두가

한 가족이다

한핏줄에 태어난 배달민족의 동일한 DNA이다

헌데

예전의 그 많던 바다사자 강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울릉도 해변가에서 눈에 띈 강치 닮은 수석 한 점

거실 좌대에 앉혀두고 보고 있노라면

강치의 포효하는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Ⅳ.탕건봉에 걸터앉은 조선선비 모셔다가

촛대봉에 촛불 밝히고

서도의 젖줄 물골에서 길어올린 석간수

화롯불에 펄펄끓여

지리산밑 화개녹차 우려내어

이 모든 독도의 형제 자매들과 찻자리 한번 하고 지고

이왕지사

삼형제굴 삼형제도 불러오고 이사부 안용복 홍순칠 최종덕 김성도님도 모셔와서

굿거리 장단 한자락에 육자배기 한 소절

걸쭉하게 뽑아보면 어떠하리 조선땅의 정기 가득한 찻기운 얼큰해져 오면

코끼리 바위 속 잠자는 백색 코끼리 지즐 타고

물골가는 구백계단 층층이 밟고 올라

서도의 어디쯤에서 물길마다 젖어드는 목청으로

‘아! 대한민국’ 한번 외쳐볼까

한반도 모양 새겨진 경사진 절벽 바라보며 어느 누구도 감히 범하지 못하게

속물들의 야욕 단방에 날려버리는

할喝 한번 내질러볼까

Ⅴ.너를 생각하면 태양처럼 달빛처럼 고여 오는 울렁거림 있어

각혈하듯 그리움 풀며

맨발로라도 달려가고 싶은

애타는 목마름

그 자태 그 풍광 꿈엔들 잊겠는가

다정도 병인양 하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사 알 것 같다

한 원로 시인은

숨어들고 싶은 영혼의 섬 하나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는데

독도 넌

내 생애에서 붉은 노을빛같은 영원한 노스탤지어인가?

젊은날 청춘의 깃발같은 사랑의 풍경화이런가?

새벽이슬같은 정감담아

불러보는 이름

‘내사랑 독도!’

○. 금낭화 다원

여유와 느림의 미학

정靜과 풍류가 아우러지고

정갈한 세월의 발자취를

자리마다 묻혀가며

세상 인연사를 논하는 곳

삶의 고단한 어깨 한 쭉지

닥아가면

찻잔에 스며드는 인정의 향기

햇살처럼 피어오르고

천년노송 가지위 내려앉은

달빛같은 정겨움이

소록소록 넘쳐나는 곳

우주도 안을 것 같은

빈마음 한자락

차향 속에 녹아들면

세파에 찌든 흔적들

버리고 또 버리며

훠이 훠이

하심下心으로 돌아가리

오가는 길손들

애뜻한 사연 받아내는

무량심無量心 팽주의 얼굴은

한송이의 금낭화

수월관음도의 광배光背마냥 빛난다

아! 금어金魚의 금빛 비늘인가

금정金井의 금빛 물결인가

금정산 자락에 걸린

금빛나는 주머니

‘금낭화 다원’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