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B선원에서 개원(開院)이래 79회를 맞이하는 '(하계)철야정진수련'을 올 여름부터 이곳 산청에서 재개되었다. (그간 수년 동안 이곳에서는 사정상 수련이 이루어지지 않았음).
매년 겨울과 여름 두 번에 걸쳐 일주일간씩 실시되며 근 4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수련이다.
그간 많은 뜻있는 재가불자들에게 생활 속의 거사풍 불교의 진수를 체득케 해주는 수행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예불, 설법, 좌선, 차담과 포행, 울력 등으로 진행되며 묵언을 전제로 한다. 일주일간 바닥에 둥을 부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새말귀 ‘이 뭐꼬’등과 함께 용맹정진에 드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절대성의 자리에서 상대성을 굴리는 시공(時空)이라는 근본자리, 본래 면목의 자리, 공겁(空劫)이라는 절대성의 그 자리와 인(人)이라는 상대성이 결합된 말 “공겁인(空劫人)”을 핵심테마로 한다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법신이 이 몸뚱이를 굴린다. 절대의 차원과 상대의 차원이 공존하는 자리를 추구한다는. 한국의 유마거사라 일컬어지는 백봉선생님의 강론 설법을 주축으로 하여 현시대에 맞게 유마경 금강경, 능엄경 등을 재해석 한다. “삼계(三界)의 주인공임을 자부하고 만법을 굴린다”는 명제 아래서 끊임없이 자아를 탐구하는 좌선이 이루어진다.
Yoga와 여타 수행법은 방법은 틀려도 추구하는 근본의 목표와 자리는 유사하다고 가정할진대 기독교의 철야기도나 가톨릭의 묵상기도 등도 한 길을 지향한다고 생각된다.
2013. 7/28 ~ 8/2 (5박 6일간), 오랜만에 갖는 자기와의 대면 시간에 행복했던 일정이었다.
흠이라면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쉬는 시간을 이용해 끊임없이 외부와의 소통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게 집중을 흩뜨리고 몰입을 방해했지만, 완전 unpluged(휴대폰, 인터넷기기등의 전원을 차단함)된 상태란 그리 쉽지는 않다. 생활인으로써는 욕심일 뿐이다.
큰 울림은 못받았을지언정 자신을 탐구하는 습(習)을 다시 찾아낸 시간이 되었던 것에 만족한다. 더욱 철저히 수련에 임할 것을 기약해 본다.
참가한 도반들의 성성한 눈빛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아직 세상은 살아볼 만하다고 자위하며 회향(回鄕)하다. 회향 후 법당치마 위 말법집이며, 근처를 맴도는 뱀의 거처를 옮기는 것도 본인의 소임이 되었다. 그들과 더불어 공존할 수 있도록 하자고 다짐은 하였으나 용이치는 않는 일이었다.
말벌님 독사뱀님 널리 양지해 주옵소서...
수련 기간 중 선원 뜰에는 상사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는데 밤 시간 탑돌이나 포행 시에 달빛에 비치는 모습이 정감을 한결 돋게 하였다. 눈길 한번 안주는 스님을 연모하다 상사병으로 죽은 처자의 에피소드가 담겨있어 더욱 처연하기도 한 꽃이다.
이곳 산청 특유의 곶감 용도의 감나무에 달린 감도 지천이었고, 밤나무에 다닥다닥 매달린 밤송이도 눈에 띈다. 유난히 이곳 밤은 당도가 높기로 소문나 있다. 토질 관계인지 몰라도. 봄 채취시절을 지나서인지 훌쩍 자란 고사리군락도 보이고 몸에 좋고 효소 담기 좋은 산사나무 열매도 탐스럽게 익어가고, 비자나무 열매도 익어가고 있었다.
산청은 명경지수 경호강이 흘러가고 천년 신라 고찰으로 내원사, 대원사, 절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산청곶감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또한 “간산 간수 간인 간세(看山 看水 看人 看世)” 산을 보고 물을 보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고 말씀하신 대쪽같이 올곧았던 겨레의 스승 남명 조식 선생님(1501-1572)의 덕천선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북의 퇴계 이황 선생님과 더불어 남명은 경남의 큰 스승으로 받들어졌다.
한의학의 성지라고 일컬을 만큼 약초로 유명하고 동의보감의 허준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문익점의 목화시배지가 있고 성철스님의 생가가 있는 불연 깊은 고장이다. 지금은 동, 서 석탑만 남아 있지만 ‘단속사’란 절이 있었는데, 지리산 중에 있었던 이름 높은 신라 고찰로써 고승이 많이 배출되었던 절이었다. 신라의 유명한 화가 솔거가 그린 ‘유마상’이 있었다고 전한다. 아쉽게 조선시대 정유재란때 왜적의 방화로 불타버렸다.
바로 이곳 산청 B선원의 창시자 백봉 김기추 선생이 현대의 유마거사로 불리어지는 것과 결코 우연한 일치만은 아닐듯 하다.
귀가하는 길에 ‘남사예담촌’에 들러 황토흙 덮인 돌담길도 걸어보았는데, 이 남사 여담촌 골목길에는 수령 몇백년을 간직한 회화나무가 양쪽에서 서로 교차된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다. 그 교차된 회화나무 아래를 통과하면 부부나 애인이 백년해로 한다는 얘기가 있고, 이세들은 뛰어난 학문적 자질을 갖고 태어난다는 얘기가 깃들어 있기에 이곳을 찾는 나그네는 꼭 한번 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회화나무는 사대부의 나무라 할 만큼 학자들을 배출케 한다는 얘기가 있어 집안 뜰에 많이 심었다. 그런 연유인지는 모르나 선비의 고장인 산청엔 이 회화나무가 유난히 많이 심겨져 있다고 한다.
세필화로 그린 ‘인도이야기’등의 책을 펴내기도 했던 이 호신 화백도 이곳에 거처를 두고 있었다. 이 화백의 교차된 ‘회화나무풍경’ ‘앵무꽃그림’ ‘달밤에 매화’등의 그림에 걸려있는 식당에서 파전 한 접시 곡차 한잔으로 땀을 식히다.
올해 초에 서울서 이곳 산청으로 거처를 옮겨 B선원을 이끌어가고 있는 청봉거사부부께 다시 한번 경의와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도인의 자질은 천성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나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평생지기이기도 한 청봉거사 부부를 보면 재삼 확인케 된다.
현대의 수행에는 법.재.지.려(法.財.地.侶)가 동반되어야 한다는데 눈 밝은 스승과 법, 적당한 재물, 수행공간, 힘과 격려와 용기를 주는 도반 이 네 가지가 필요하다는 뜻인데 다른 부분은 몰라도 평생도반 하나는 잘 둔 것 같아 마음 든든하다.
다음 수련기회를 기약해 본다.
2013. 8. 12. 월-雲亨-
조회 : 9,8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