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최진태 선생님을 정식으로 대면한 것은 어느 상가에서였다. 최 선생님은 아주 소탈한 인상과 옷차림을 하고서 문상객들 사이에 조용하게 앉아 있었다.

“아, 요가 선생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누군가의 소개로 인사를 처음 나누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최 선생님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신문사에 오륙 년 전부터 꾸려진 요가동호회를 이끌면서 그는 기자들 이름을 많이 알고 있었다. 내가 더 놀란 것은 며칠 뒤였다. 내 메일로 슬픔을 위로한 장시長詩를 보내왔는데 나는 그 시를 읽고서 그 길고 긴 시를 한 줄로 물 흐르는 듯 꿰고 있는 호흡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물’이 흐르는 게 아니라 ‘마음’이 흐르고 있었다. 아, 이런 게 요가 수행자의 내공인가.

그런데 나는 이번 시집의 원고를 받고 보고서 또 놀라고야 말았다. 모두 166편에 달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시가 들어 있는 시집은 처음 본다. 아무리 많아도 80편 정도면 시집 한 권이 되니까 시집 두 권 분량은 족히 되는 셈이다. 하지만 166 편의 시가 단출하게 읽히니 이게 또 무슨 일인가. 나는 많은 시를 꿰고 있는 최 선생님의 열의에 찬 호흡에 다시 한 번 더 놀라게 되었다.

그는 시조시인이기도 하다. 시조는 밖으로 드러난 리듬, 즉 가지런한 호흡에 기반을 둔 장르다. 내가 알기에는 유장한 자연 속에서 컸던 이들이 시조를 쓰는 경우가 많다. 최 선생님의 고향이 사천이라는데 한려수도 바다 위에 눈부시고 부드럽게 열과 오를 짓고 있는 올망졸망한 구릉 같은 섬들과, 그것들의 무릎을 일정하게 씻어 내리는 푸른 파도가 어울린 풍정 속에서 자랐다면 시조로 가기 쉬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통영 사량도가 눈앞에 보이는 자란만의 고성군 하일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그것을 내 육신의 느낌으로 알고 있다고 눙쳐 본다.

 

쑥에 배인 도톰한 도다리 살

한입 베어 물면

도다리가 혀끝에서

가물가물 감겨오고

온몸에 잉잉잉

바닷바람이 분다

담백고소한 맛

쏴하고 퍼지는 것이

입안이 다 얼얼하다

아, 어떻게 혀끝에 가물가물 감겨오는 이다지도 맛있는 바다가 있단 말인가. ‘온몸에 잉잉잉/ 바닷바람이 분다’는 저 표현의 ‘잉잉잉’ 소리는 마저 알 수 없고 다만 노래가 나올 정도로 맛있다는 것은 알겠다. 이런 흥얼거림이 시가 되고, 시조가 되는 것일 테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나는 최 선생님과 만나 술을 하다가 두 번 ‘증발’한 적이 있다. 두 번째는 가히 압권이었다. 최 선생님과 단 둘이서 마주 앉은 식사 자리였는데 반주로 막걸리를 곁들이다가 나는 그만 나를 잃어버렸다. 아뿔싸, 혼취해 최 선생님을 혼자 두고 나와 버린 것이다. 전하는 말로만 듣던 일이 그날 나에게 일어난 것이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것은 혼자서 나왔다는 사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완벽한 실종이었고 증발이었고 블랙아웃이었다. 아마도 그날 블랙홀에 삼켜지듯 최 선생님의 내공 속으로 한량없이 빠져들었던 듯하다.

그날 나는 그 자리를 나도 모르게 나와서 과연 어디에 당도했던 것일까. 그렇다. 그것은 낭패였다. ‘그래서 누군가는/ 술은 맛만 생각하고 마시면/ 술꾼이 된다고 했고/ 술 멋을 찾아 마시면/ 선비가 된다고 했다’(‘술’ 중에서)는 최 선생님의 시에 의하면 나는 술꾼도 선비도 아니었으니 그 낭패를 어찌 할 것인가. 더욱이 최 선생님은 특유의 겸손한 부드러움으로 ‘아닙니다. 술에 장사 없답니다. 저도 그런 경험 많기에’라며 외려 나를 위로까지 해주었으니 낭패의 심도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차의 세계에 깊이 침잠하고 있는 최 선생님의 시편들 중에서 ‘차茶마당’에 나와 있는 ‘인생이란 그저 이렇게/ 차 한잔 머금고/ 미소짓는 연습 하는 것’이란 구절처럼 미소나 지을 수 밖에. 그러나 내가 머금을 수 있는 한 잔의 차는 그 어디에 있을는지.

최 선생님은 무엇보다 요가 수행자이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의 시들이 눈에 띈다. ‘가부좌 틀고 앉아/ 묵언수행 선정禪定에 든 수행자의 형형한 눈빛/ 사유하는 철인哲人의 자태/ 독도는 그런 섬이다’(‘내 사랑 독도’ 중에서). 그는 푸른 동해에서 말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독도를 아주 사랑하는데 그건 그가 수행자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늘 냄새’가 무언지 아시는가. 그의 시를 읽으면서 ‘하늘 냄새’라는 말을 ‘고것 참 희한하다’는 느낌으로 아주 새롭게 발견했다.

 

걷다 걷다 뒤돌아보면

어느새

낡은 옷자락 사라진

풍경 너머로

한 땀 한 땀 박음질한

맑은 사유의

새 옷 한 벌이

구름처럼 펼쳐져 있다

길 위를 두 발로 걸으며

덤으로 얻은 선물,

하늘 냄새가 난다

 

최 선생님은 광복절 날 송도 갈맷길을 걸으면서 ‘하늘 냄새’를 맡았다는데 나도 그 길을 걸으며, 아마도 ‘파란 냄새’일 것만 같은 그 냄새를 맡기 위해 코를 킁킁거려 보리라.

‘까마(kama)’라는 시가 있다. ‘까마’는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으로 흔히 성性, 열정, 사랑, 애욕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이를 최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스멀스멀/ 능청능청/ 슬금슬금/ 굼실굼실/ 달짝지근/ 아슬아슬/ 짜릿짜릿/ 뜨끈뜨끈/ 근질근질/ 불끈불끈/ 후끈후끈/ 멍멍탱탱.’ 아, 이 현란한 감각적 부사들.

우리는 감각이 출렁거리는 이 속세에서 살고 있다. 이게 삶의 실상이다. 그러나 이 실상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숙제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에 이 실상에 하나의 언어로 완전히 몸을 싣는 것이 시의 길이다. 하나하나의 구체적 경험, 낱개들을 그 구체와 낱개로서 온전히 살아버리게 하는 것이 시의 길이다. 더 많은 감각들, 생짜배기 날 것들을 새로운 언어로 포착하는 것이 시의 지난한 길이다. 이것은 위험하고 불온하기도 하며, 애타는 것이면서, 또한 참으로 닿기 어려운 길이기도 하다.

나는 최 선생님이 요가로 이미 그 길에 이르러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최 선생님은 부산일보 지면에 ‘최진태의 요가로 세상 읽기’라는 난을 1년 훨씬 넘게 인기리에 연재하고 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세상의 모든 길은 통한다’는 것을 새삼 또 느끼게 되었다. 그가 이르러 있는 요가의 깊이를 나는 모조리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글을 읽으면서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박학과 다식, 감성의 깊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글에서 참으로 시적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 선생님의 시는 다름 아닌 요가다.

 

구도의 한 방법으로, 요가는 성性 에너지를 성聖 에너지로 바꿔 준다. 성과 속은 사실 단일한 에너지의 양극인 것이다.(‘16. 요가와 성’ 중에서)

 

자세는 그 사람의 마음을 반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세는 성격을 만드는 근본이고, 마음은 자세를 만드는 근본이다.(‘4. 어린이 요가’ 중에서)

 

체득의 깊이로서 이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나는 다만 이 지상의 이 육신 속에 많은 것이 깃들어 있다는 뜻 정도를 새길 뿐이다. 최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나는 성性과 성聖을 하나로 결합시킬 수 있는, 혹은 그것은 훌쩍 뛰어넘어버리는, 마음을 바로잡는 올바른 자세를 견지할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그게 이 삶에서 가능할지, 이 삶 너머에서 가능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인생과 삶을 통찰하는 시, 꽃에 대한 시, 요가원 식구들에 대한 시, 차와 술에 대한 시 등 최 선생님이 노래하는 것은 실로 다양하다. 글로 쓰는 시도 있고, 글로 쓰지 않아도 시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그에게서 읽은 시의 핵심은 ‘마음을 바로잡는 올바른 자세’, 바로 이것이다.

시집 말미에 실려 있는 ‘이곳이 자갈치다’ ‘서면은 이런 곳이다’, 두 편의 시는 부산을 극진하게 노래한 시다. 그 시에서 서민적인 맨 얼굴이 떠오른다. 그 얼굴이 바로 환갑 즈음에 이른 최진태 선생님의 얼굴이다.

최 선생님은 한려수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통영의 산자락에 그의 호를 딴 운형雲亨 산방을 두고 있다. ‘꽃은 피고/ 새는 울고/ 물은 흘러가는 저 풍경과 마주하면서 무생사無生死를 논해보세’(‘차향 가득한 운형 산방으로 오시게’ 중에서)라는 곳이다. 아마도 거기서는 ‘취공吹孔에 혼을 싣고서/ 시공을 적셔간다’(‘대금 부는 운지님’ 중에서)는 저 아득한 소리가 들릴 것이다. 최 선생님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아, 그곳에 가닿고 싶다. 양명하고 차가운 날, 새파란 하늘이 한없이 높고 깊다. 하늘 냄새를 맡아 본다. 킁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