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풍한설 내공 다진 비파나무> - 최진태의 식물오디세이(15)

비파나무는 열매가 현악기의 하나인 비파를 닮았다고도 하고, 또 누구는 열매보다 잎이 닮았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나무 이름에 비파라는 오래된 악기 이름이 붙었다. 비파는 장미과의 쌍록교목으로 중국과 일본 등의 남쪽 지방이 원산지다. 우리나라는 남해 바닷가 동네나 섬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식물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욕지도나 거제도, 완도 등에서 흔히 접하게 된다. 비파나무 꽃은 갈색 털로 덮인 꽃받침 잎 안쪽에서 다섯 장의 꽃잎이 상아색으로 피어난다. 활짝 피면 지름 1센티미터 정도 크기인데, 그리 화려하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겨울에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꽃이어서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암술과 수술이 같이 있어서 자기들끼리 수정이 가능하므로 특별히 다른 곤충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겨울에도 꽃을 피울 수 있는 모양이다. 심어놓고 적어도 7-8년 이상은 되어야 열매가 열기 시작하는 대기만성형 늦둥이 나무다. 이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이유는 우선 비파라는 과일을 얻기 위함이다. 살구보다 노란빛이 더 강하고 잘 익으면 달콤한 맛은 물론 신 맛도 살짝 들어있고 떫은맛도 느껴진다. 한 마디로 요즘 달고 부드러운 맛에 길들여진 세대에서는 썩 맛있는 과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굵은 적갈색 씨앗이 가운데에 두세개씩 들어 있어서 육질이 얼마 안 되는 것도 비파가 맛있는 과일이 되기 어려운 이유이다. 그러나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주지라는 중국시인은 ‘비파부’에서 “추위와 더위에 변함없이 눈을 맞으며 꽃을 흩날리네, 이름은 악기와 같고 재질은 곧은 소나무와 다르네” 라고 노래하고 있고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즐겨 먹던 과일이라고도 전해진다. 정몽주가 중국 강소성 양주에서 비파열매를 처음 먹고 지은 시인 ‘식비파’ 도 있다. 조선 초에 문인 송희정은 세종 때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 와서 “황금 탄환 밀랍 탄환이 / 살구도 아니고 매실도 아닌데 / 겨울에 꽃피고 여름에 열매 맺으니 / 모든 과일 중에 우두머리라네 ” 라고 읊고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도 비파열매를 무척 좋아했다고 하는데 아끼는 비파열매에 무엄하게도(?) 손을 댄 부하 병사를 꾀를 내어 찾아내어 벌하는 일화가 전해오는 것을 보아 예전에는 비파가 꽤 인기 과일이었던 모양이다. 비파 열매가 익으면 노랑색으로 변하는데 익어가는 속도는 몇 일 안 걸리므로 수확시기를 놓치면 뭉그러져 버리고 나무에서 뚝 떨어져 버린다. ‘아끼면 뭐 된다’ 는 말이 실감나는 나무이다. 예로부터 “집안에 비파나무 한그루만 있으면 병원에 갈 일이 없다” 고 말할 정도로 몸에 좋은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민간요법에 사용되어 왔다. 중국에서도 대약왕수(大藥王樹)라 부르며 여러 가지 쓰임이 전해지고 있다. 감기예방에 좋은 비타민 A와 기초면역력을 높여주는 비타민C, 고운 피부를 돕는 베타카로틴과 구연산, 발암억제 효과가 있는 아미그달린과 노화예방 성분 등이 풍부하다. 잎은 말려서 차로 마시고 뿌리와 씨앗은 한약재로 쓰인다. 앞으로 웰빙 식품으로 더욱 각광 받을 전망이다. 인도 전통의학에서도 난치병을 치료하는데 비파나무를 사용할 정도다. 전남 지방에서는 10대 틈새 소득 작물로 선정되기도 한 나무이다. 6월 한달 동안 바짝 따서 상품으로 출하 하는데, 고소득 작물로서 어떠한 관리도 필요 없다고 한다. 병충해도 잘 들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서 따로 약을 치거나 하는 게 없어서 더욱 믿고 먹을 수 있는 과일이다. 비파 잎과 열매를 이용한 비파와인도 나오고 있다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시음해 봄 직도 하다.

“부드러운 전통악기 / 떠올리는 비파나무 / 아니되오 자극적 맛 / 입안에선 떱떠름해도 / 속 깊고 알 꽉 차있는 / 천하제일 진국이라 // 겉만 요란 무리 속에 / 무덤덤한 그대 성품 / 삭풍한설 내공 다져 / 겨울 꽃도 피웠다네 / 난치병도 도전하리라 / 황금불꽃 밝히며 ” (필자의 졸시 ‘비파나무’)

지금까지 예사로 보아왔던 동양악기 비파를 닮은 은은하고 부드러운 과일 비파 열매와 그 나무를 이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대하여야 될 듯하다.

    -2016. 6. 22. 水-

           운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