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일 불볕더위가 기승인데 무궁화가 지천으로 피고 있다. 한 여름부터 시작하여 가을의 기미가 느껴질 무렵까지 무궁무진하게 꽃을 피우는 우리나라 꽃이다. 무궁화는 일명 근화(槿花), 순화(舜花), 화노(花奴) 그리고 울타리 꽃이라는 뜻의 번리화로 불린다. 꽃말은 한 마음 한 뜻, 일편단심이다. 무궁화(無窮花)라는 이름은 여름에서부터 가을까지 계속해서 꽃이 피고 지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이 무궁화라는 이름을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고려 때 시인 이규보 였다고 한다. 무궁화는 종류가 수백 가지 되는데 그 중 흰색에다 화심에는 붉은색이 박힌 ‘백색단심’이 있다. 이 꽃의 하얀 꽃잎은 이 나라 사람의 마음씨와 같은 청정무구를 나타내고 진홍빛 화심은 이 나라 백성의 태양처럼 붉고 뜨거운 마음을 나타내어 전체적으로 일편단심을 상징한다. 꽃잎을 따라 방사하는 모양은 이 나라의 발전과 번영의 상징처럼 보인다. 조지훈은 ‘희디 흰 바탕은 이 나라 사람들의 깨끗한 마음씨와 안으로 들어갈수록 면면히 붉게 물들어 마침내 그 한복판에서 자주빛으로 불타는 이 꽃은 이 나라 사람이 그리워하는 삶’이라 하였다. 우리나라에 무궁화가 많이 자라고 있다는 기록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저술된 동양 최고(最古)의 지리서 ‘산해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중국 고전인 ‘고금기(故今記)’에는 ‘군자의 나라는 지방이 천리인데 무궁화가 많이 핀다’ 고 하여 우리나라에 무궁화가 많이 피는 것을 예찬하였다. 신라 때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국서 가운데에는 우리나라를 근화지향(槿花之鄕)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무궁화는 한 민족을 상징한다. 무궁화에는 우리의 민족정신이 깃들어 있고 우리 민족의 얼이 스며져 있기 때문이다. 독립 운동가이며 교육자인 남궁억 선생이 고향 홍천에서 무궁화 묘목을 길러 전국에 보급하여 심게 했다는 것은 그를 통해서 민족의 얼을 심어 사라져가는 애국심을 되살아나게 하기 위한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으리라. 국권이 상실되던 해 애국지사 황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다음과 같은 절명시를 남겼다.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슬픔에 젖었네. 무궁화 이 강산이 이젠 침몰되어 버렸네’ , 또한 김좌진 장군은 ‘삼천리 무궁화 땅에 왜놈이 왠일이냐’ 라고 부르짖으며 조국 광복을 애타게 기원하였다. 시인 박두진은 그의 시 ‘무궁화’에서 ‘빛의 나라 아침 햇살의 꽃으로 핀다. 머나먼 겨레 얼의 굽이처요 정기다’ 라고 읊고 있으며, 동요 작가 윤극영은 어린이의 상징을 무궁화로 하자고 주장 하였다. 이규태는 ‘하얀 무궁화’에서 ‘하얀 무궁화를 보고 있으면 흰 옷 입고서 평생 옷가지 접고 계시던 어머니가 연상된다’ 하였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근화일일성(槿花一日成)이라 하여 무궁화는 하루에 스스로 영화를 다 이룬다 하였다. 당나라 시인 이백은 ‘함초롬히 피어난 섬돌 옆의 무궁화, 온 동산을 살펴도 이 꽃에 견줄 것이 없구려’ 라고 읊고 있다. 사실 들여다보면 무궁화만큼 아름다운 꽃도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시경(詩經)에는 ‘안여순화(顔如舜華)’라는 말이 있다.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 마치 무궁화와 같다는 뜻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에서는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라 하여 꽃 중의 꽃이라 칭송하고 있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궁화의 고아하고 순결한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있다. 무궁화는 생명력이 강하다.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정신을 잘 나타낸 꽃이라 하겠다. 폭염 속에서도 줄기차게 피는 모습은 예사 꽃들에게는 찾을 수 없는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지사와 열사 또는 선구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매일매일 새롭게 피고 지는 꽃봉오리는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을 상기시킨다. 요염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꽃이 아닌 당당하고 점잖은 모습은 군자다운 풍모를 갖추고 있어 유유자적하는 군자를 떠올리게 한다. 질 때 어지럽히지 않고 깨끗하게 끝맺는 모습은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떠오른다. 아침의 도(道)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조문도 석사(朝聞道 夕死)’의 철학도 생각키운다. 이처럼 무궁화는 단지 눈으로만 보는 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깊은 성찰의 눈으로 보는 꽃이며, 나라 사랑하는 눈으로 보는 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무궁화를 통해 인생의 철학, 역사의 진리를 다시금 느껴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아득히 먼 상고시대부터 / 이 땅을 수놓았던 꽃 / 오천년 질곡의 역사 속 / 함께 지켜온 동반자라네, // 흰 도포 자락 휘날리며 / 백색 치마저고리 단장한 채 / 이 땅을 지켜온 / 가난한 숨결들의 혼이 서린 꽃, // 붉은 마음 한 가닥 풀어 / 일편단심 뜨거운 정열로 / 동방의 등불 밝히며 / 터트리는 꽃봉오리들 / 봉오리 봉오리마다 서로를 보듬으며 / 새벽을 깨우는가 했더니 / 이다지도 곱구려, // 내일 또 다시 떠오르는 태양 닮아 / 무궁함을 다져가는 / 겨레의 꽃 / 영원한 ‘홍익인간’으로 피고 지며 또 피어날 / 대한의 꽃 / 무궁화 ”         (필자의 졸시 ‘무궁화’)  

2016. 8. 16. 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