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해도 입에 침에 고이는, 석류>-최진태의 식물 오디세이 (22)
‘어쩌자 가을되어 문은 삐걱 여시나’ 라고 미당이 읊었던 탐스런 석류, 한 여름 내내 뙤약볕에 시달리던 그 석류가 주렁주렁 풍성한 가을을 노래하며 가을의 빛으로 붉디붉게 영글어 가고 있다. 그 모습은 푸르디푸른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린다. 석류 알이 터질 쯤이야 가을이 익어 간다는 말이 적격이다. 석류하면 먼저 홍보석 같은 알갱이를 깨어 물기도 전에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가득 고이게 된다. 진저리 치게 하던 새콤달콤한 그 열매의 신맛이 미각보다 뇌에서 먼저 전해짐을 어이하랴. 석류나무는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이 원산이며 중국을 통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자기의 문양으로도 쓰였으며 문헌상으로는 고려사에 처음 등장한다. 초여름 햇살 아래 선홍빛으로 석류꽃이 피면 아름다운 페르시아 공주가 연상된다. 비바람에 떨어진 석류의 통꽃은 처연하기조차 하다. 고려 때, 문장가 이규보는 철심장을 가진 무정한 사람조차도 석류꽃 앞에서는 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고 석류를 찬양하였다. 성삼문은 석류의 꽃은 사람을 속되게 하지 않게 하고, 그 열매는 신선이 되게 한다 하였다. 이 같은 석류는 일찍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랑을 받아 왔다. 호머의 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또는 라파엘이나 세잔느 같은 화가들의 좋은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이탈리아 화가 보티첼리의 그림인 ‘성(聖) 성모의 석류’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석류나무 꽃과 잎을 디자인하여 궁전을 건립하였고 왕은 석류로 디자인한 의복과 장신구를 사용하였으며, 석류는 왕의 열매이고 번영의 열매로 사랑 받기도 하였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벽화에도 석류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석류가 부활의 상징이라고 하며 죽은 이와 함께 묻었다고 한다. 또한, 석류나무의 열매가 음양의 상징성이 있어 다산과 득남을 기원하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그러기에 옛 여인들의 신변잡품에 다양하게 쓰였으며 석류모양이 단골 아이콘으로 들어갔다. 귀부인들의 머리에는 석류꽃 모양으로 새긴 석류잠을 꽂기도 했다. 석류는 성서에도 여러 번 등장하며 솔로몬 왕은 석류나무 과수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당송 팔대가 중 한 사람인 왕 안석은 석류와 관련해서 ‘홍일점(紅一點)’ 이라는 상징적인 단어를 사용했다. 원시 종교에서는 석류는 인간과 동식물의 번식을 관장하는 고대의 지모신들과도 인연이 깊다. 그 중에서도 순산, 부부애, 화목 등의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하는 인도의 하리티 신과 석류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신이 내린 선물로 불리는 석류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풍부한 과일로 예로부터 여성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신의 과일’로 불리며 피부 보습 탄력 및 주름개선 효과 등등에 좋다고 전해진다. 특히 양귀비나 클레오파트라가 즐겨 먹은 과일이라 하여 유독 여성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흠잡을 데 없고 반듯하며 완전한 것은 흔히 아름답다 한다. 그러나 불완전한 것 속에서 부조화 속에서 반듯한 것에서 균형 잡힌 것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또 다른 아름다움과 멋이 있다. 이를 일러 찌그러짐의 미, 파격의 미, 우스꽝스러움의 미라 할까? 석류를 대하며는 퉁망울의 우스꽝스런 돌장승을 떠올리고 그 중에서도 통영의 벅수장승이 생각 키운다. 꽃이 필 때 헤 벌려진 모습을 보고 좀 모자라는 듯 하여 석류의 꽃말이 바보, 우둔함이라지만 자신을 자칭 바보라 했던 김수환 추기경의 깊은 뜻을 떠올려 본다. 석류가 가진 부조화 속 조화, 불완전 속 완전함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석류 알갱이 하나하나 씹을 때 마다 전해오는 시큼아릿한 슬픔의 맛, 달콤 알싸한 환희의 맛까지도 아우르면서 말이다. 흘러간 유행가인 정은숙의 ‘석류의 계절’ 노랫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올 듯 한 깊어가는 가을날이다.
“붉게 타는/ 구도 일념/ 명상 속에 다지는가/ 내려놓은 마음자락에/ 범종소리 사운 대며/ 하늘문 그 한 소식을/ 빼곡하게 뱉어낸다” (필자의 졸시 ‘석류’)
2016. 10. 12
-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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