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밭둑 울타리 구실을 하고 있는 탱자나무를 볼 때마다, 고향 길을 떠올리게 되고 아득한 향수가 새록새록 솟아오른다. 탱자나무는 운향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일명 구귤(枸橘)이라 한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철에 피는 탱자 꽃은 잎보다 먼저 피는데, 희고 작으나 향기가 진하여 무척 정취가 있다. 날카롭고 딱딱한 가시 밖에 없는 삭막한 가지 위에 난데없이 꽃 봉우리가 돋아나 다섯 장의 꽃잎을 활짝 펼쳐 보이는 모습은 신기롭게도 느껴진다. 탱자 꽃은 느긋하게 천천히 피어나고 서둘러 지지 않는다는 점이 봄꽃들의 성질과는 사뭇 다르다. ‘탱자나무 울타리는 귀신도 뚫지 못한다’고 할 정도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울타리와 방책용으로 많이 애용되었다. 탱자 울타리를 지리(枳籬)또는 지번(枳藩) 이라고 부른다. 울타리는 대체로 생울타리와 구조물 울타리가 있는데 생울타리로 쓰는 나무는 탱자나무, 향나무, 회양목, 측백나무, 아카시아나무, 대나무, 사철나무 등이 있다. 옛날의 이러한 울타리는 요즘의 철옹성 같고 무서울 만큼 완벽한 울타리가 아니며 외부와의 절대적 차단의 벽은 더 더욱 아니었다. 탱자나무 울타리는 다른 여타의 울타리 또는 나무와는 달리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는 멋쟁이다. 봄이면 하얀 꽃과 향기를 천지에 뿌리고, 여름이면 진 초록빛으로 변해 완벽한 울타리 역할을 했으며, 가을이면 황금 빛 열매를 보석처럼 주렁주렁 매달아 보는 이로 하여금 눈부시게 하며 겨울이면 모든 것 다 비운 채 앙상한 몸매에 날이 선 가시로 그 강골스러움을 드러내는 나무로 마술피리 닮은 나무로 칭해도 과하지 않을 것 같다. 또 다른 용도로는 음나무(엉개나무), 호랑가시나무처럼 장애와 잡귀를 쫓는 주술적 수단 즉 벽사(辟邪)의 의미로 심었다고 한다. 또한 역설적으로 절집이나 사대부 집안의 정원 조경수로도 심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 풍광을 뽐내며 정원의 운치를 돋보이게 하는 탱자나무 들이 전해 오고 있다. 필경 생울타리였든 탱자나무가 이토록 멋지게 탈바꿈도 가능한 것이다. 이게 바로 귤화위지(橘化爲枳) 또는 남귤북지(南橘北枳)의 의미가 아닐까? 옛날 제나라에 안영이란 유명한 재상이 있었다. 안영의 이름을 들은 초나라의 임금은 자기나라에 그를 초청했다. 온 천하 사람이 칭찬하는 안영을 골려주겠다는 타고난 심술 때문이었다. 초나라의 임금은 간단한 인사말을 나누기가 바쁘게 한 죄인을 불러놓고 말했다. “제 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하는 모양이군요” 그러자 안영은 태연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강남 쪽의 귤을 북쪽으로 옮기면 탱자가 되고 마는 것은 토질 때문입니다. 저 제 나라 사람이 제 나라에 있을 때는 도둑질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초나라로 와서 도둑질을 한 것을 보면 초나라 풍토가 좋지 않은가 하옵니다”라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맹자가 자녀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고사처럼 교육에 따라, 지리적 환경에 따라 본성도 바뀌어 갈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탱자는 노랗게 익으면 천연방향제로 이용될 만큼 향기가 매우 좋다. 허나 향기가 좋다고 맛까지 좋은 것은 아닌가 보다. 반면에 나링긴과 폰키린등의 약리 성분이 들어 있어서 한방에서는 약으로 쓰인다. 위장의 팽만감이나 무력증, 소화불량, 변비, 탈항 등에 효험이 있다. 민간요법에서는 두드러기 나는데 탱자 즙을 바르고, 또 달여서 그 물을 마시면 좋다고 전해진다. 누군가 쉽사리 접근치 못하게 그렇게 탱자나무 특유의 억센 날을 세운 채 으르렁 거리며 서 있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자식, 새끼들을 보호하려고 온 몸으로 껴안고 웅크리고 있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연상케 한다. 정겹고 따뜻한 이미지의 극치이다.

‘온 몸의 진액을 / 정수리까지 뽑고 또 뽑아 올려 / 피골상접한 채 / 하늘까지 맞닿은 / 가시 형벌 // 덤빌 테면 덤벼 보라네 // 섬뜩한 저 독기 / 이 세상 그 누굴 향한 것인지? / 툭툭 튕겨져 나온 듯 하더니만 / 어느새 푸르딩딩한 그 열매가 / 마침내 황금색 탱자 되어 / 온천지에 뿜어내는 찐득한 향내 // 결국은 그거였나 / 아!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닮았구나.’ ( 최 진태의 ‘탱자나무’)

이렇듯이 외유내강(外柔內剛)이 아니고 외강내유(外剛內柔)의 탱자나무는 바로 역설의 미학이다.

  -운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