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약속 사랑나무, 연리지(連理枝)-최진태의 식물오디세이 (23)

 두 나무가 서로 각기 자라다가 가지가 얽힌 한 나무가 된 것을 연리지(連理枝)라고 부른다. 그런가 하면 두 나무의 줄기가 서로 만나 한 나무를 이루어 살아가는 나무를 연리목이라 한다. 이들은 가지나 줄기가 맞닿으면서 껍질이 벗겨져 속살이 서로 닿는 현상이다. 가지나 줄기를 키우는 형성층(부름켜)이 서로 이어지면 모든 것을 공유하게 된다. 연리지, 연리목은 가슴 아프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원한 것은 아니지만 부득이한 상황 때문에 한 평생 살아 갈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우나, 조건을 맞추면서 의좋게 살아가는 모습은 보기 좋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서로 다른 나무가 붙어사는 모습은 어찌 보면 사랑에 빠진 한 쌍의 보기 좋은 연인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아가서 부모와 자식, 가족 사이, 친구 사이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하나로 이어지는 두 나무나 가지로 형상화 된다. 그러나 연리지나 연리목의 사랑도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나무가 껍질이 터지고 진물이 흐르는 아픔과 고통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수개월 또는 수년 동안 그 아픔과 고통을 견뎌낸 후에라야만 비로소 한 몸이 되는 것이며, 그런 뒤에야 폭염과 태풍 삭풍한설 등을 함께 겪으며 함께 성장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움직여 다가갈 수는 없지만 자라고 자라서 신기하게도 서로 감싸 안는 모습이 인간의 사랑 못지않게 감동을 준다. 마치 사랑하는 사이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의 자태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나무건 사람이건 존재하는 곳엔 부딪힘과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 해결 방법은 공존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공유와 배려야말로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것을 나무는 익히 알고 있는둣 하다. 나와 다른 주변 존재들과 어울려 살아가려면 상대와의 다른 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크고 작은 아픔들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무가 서로 가지나 줄기를 공유하고 있더라도 계속 그 상태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서로에게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아닐까? 서로 다른 특성을 지녔으면서도, 마치 물과 불처럼 제 각각인 나무들이 일단 한 몸이 되면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사람들도 저렇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그러면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을 듯하다. 특히 평생을 백년해로하는 부부가 이들처럼 살 수 있다면 그 삶은 진정 축복받은 삶이 아닐까?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상처 주지 않고, 그러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늘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지혜로움.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바라볼 수 있어도 결코 간섭하거나 구속하지 않는 간격, 그래서 서로 그리워 할 수밖에 없는 사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진정으로 아껴주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친한 사이를 평생 유지하는 사람은 함께 있는 시간, 함께 있는 거리, 함께 하는 공간의 조율사 입니다”라고 박해조 시인은 읊고 있다.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한 시,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에 연리지가 인용되면서 부터 연리지는 남녀사이의 변함없는 사랑, 천생연분의 뜻으로 쓰이기 시작한다. 연리지는 쉽게 만났다 쉽게 헤어지는 헤픈 사랑을 나누는 요즘 세태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양에 에로스의 황금화살이 있다면, 동양에는 연리지가 있는 셈이다. 영원한 사랑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설계하고 싶다면 연리지. 연리목을 찾아 당신의 사랑을 순화시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함께 꼭 붙어서 살아가는 연리지에서 숭고한 사랑의 정신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오며. 

“네 속의 나 나속의 너 속박인 듯 공존인 듯/ 그 인연 닿을쯤이 우리사랑 시작일까/ 이 몸이 살아가는 이유 당신인걸 알 때쯤에// 나의피 당신주고 당신피 내가 받아/ 내 가슴에 채워지는 지고지순 눈물방울/ 천지가 개벽할망정 우리사랑 불변하리// 이몸이 환희롭던 그대가 고통 받던/ 함께 지고 함께 헤쳐 가는 행복감 충만하니/ 천년약속 사랑나무 세세토록 피고지고” (필자의 졸시 ‘연리지’)

    2016. 10. 25 火

    운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