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류학자는 동물 중에서 가장 진화된 것이 사람이라면, 식물 중에서 가장 진화된 것은 차(茶)와 난(蘭)이라 했다. 그 중에서도 차는 ‘인간이 자연이란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매체이며, 자연이 인간에게 던져주는 또 하나의 자연이며 자연의 지문이요 신의 흔적이다.’ 라고 눈빛 성성한 현인들은 갈파하고 있다. 또한 ‘다여군자 성무사(茶如君子 性無邪)’ 즉 차는 군자와 같아서 삿됨이 없다고 다성(茶聖) 초의선사는 이르고 있다. 이런 차를 선물해 주는 고마운 나무가 차나무이다. 21세기는 차의 시대라고 한다. 유럽에서는 금세기 인류를 지킬 건강식품으로 차, 붉은 포도주, 마늘, 토마토를 꼽았다. 미국의 권위 있는 통계잡지에서도 세계 10대 음료시장에 그린티 즉 녹차를 포함하여 발표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차문화의 효시는 삼국시대에 신라 선덕왕때에도 차가 있었고, 흥덕왕 3년 사신 김대렴이 중국에서 차종자를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는 중국 운남성에 있는 고차왕수(古茶王樹)로 수령 2700여년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경남 하동에 있는 ‘천연 차나무’가 있다. 차나무는 꽃과 열매가 함께하는 유일한 식물이 아닌가 싶다. 추위가 시작될 즈음 한쪽에서는 꽃이 피고 한쪽에서는 열매가 맺혀 떨어짐을 비유해 실화상봉수(実花相逢樹)라 말하기도 한다. 잎은 지지만 낙엽을 보이지 않고, 한번 싹을 틔우면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강한 생명력을 뽐내며 살아남는 나무이기도 하다. 차나무가 한번 뿌리 내린 곳에서 옮기면 잘 살지 못하는 성정을 표방하여 시집가는 집안에 뿌리를 내리라는 뜻과 아들을 나으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어서 딸을 시집 보낼 때 차씨를 함께 보내는 풍습도 있었다. 차(茶)라는 글자는 나쁜 액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뜻을 지니고 있다하여 단오날 대문에 써서 붙이기도 했다고 전한다. 또한 혼례식을 끝낸 신부가 차와 다식을 시댁의 사당에 올리는 풍속이 있었는데 이러한 풍속을 봉차(封茶)라고 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결혼 전 시댁에 예물을 보내는 봉채(封采)라는 풍속이 여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제례는 특히 차례(茶禮)를 말하는데 이것은 기제사나 명절제사때 다식(茶食)을 제수(祭需)로 올리고 향을 피우고 차로써 제례를 올렸던 것을 말해준다. 물론 술을 쓰기도 했지만 술보다는 차를 더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라 한다. 우리말 중에서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은 차를 마시는 일은 일상적으로 흔히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우리는 오래전부터 일상생활에서 차를 마셔 왔던 것이리라. 차 잎에는 흥분성이 있는 카페인과 떫은맛이 있는 탄닌 성분을 비롯하여 비타민 등이 함유되어 있어 피로회복, 이뇨, 항암 작용 등의 효과가 있다하며, 또 중금속 등을 배출시키는 작용도 있다. 그러나 세상사가 그렇듯이 과유불급이라 한꺼번에 너무 많이 마시면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예로부터 차 한잔을 마시면서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 차문화는 인생을 관조하고, 우주 만물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길이라고 하였다. ‘다선일여(茶禪一如)’ 라는 말은 차와 불교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차나 한잔 들고 가게나’라는 ‘끽다거(喫茶去)’는 당나라 조주스님의 ‘화두’로 너무나 유명하다.

“여보게, 차나 한잔 드시게나//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소용돌이치는 삶속으로 던져진 듯한 인생이라/ 허나/ 세상사가 본디 무상한 것 아니겠나/ 마음자락 하나 내려놓으면/ 그게 곧 천당이고 극락인걸/ 여보게/ 세상 명리 다 그런 것 아니겠나/ 모두가 버리고 갈 허상인걸/ 무얼 그리 안달급급 애닯아 하나/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 줌의 흙과 바람으로 가는 길/ 태어나기 이전으로 가는 길/ 다시 돌아가는 길/ 여보게, 차나 한 잔 드시게나”〔필자의 졸시 ‘끽다거(喫茶去)’〕.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이 다가왔다. 침묵이어도 좋고 마음속의 깊은 성찰을 위해서도 좋다. 잠시 정갈한 자세로 앉아 따뜻한 녹차 한잔 마시며 차나무가 주는 올곧은 성정을 온 몸으로 한번 느껴보시길 권한다. 탐내고 성내며 어리석음이 온갖 근심과 고통을 만들지만 나의 마음 쓰는 대로 또 다시 아름다운 모습으로 장엄(莊嚴)을 꿈꿀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함께 간직하시길 바라면서 

2016. 11. 8. 火

운형 최 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