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으로 꽃을 피우는 무화과나무>

무화과나무를 흔히들 꽃 없이 열매를 맺는 나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실제로 무화과나무에는 아무리 봐도 꽃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세상에 어떤 식물이 꽃 없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하늘을 봐야 별을 딸 수 있다는 사실은 만고의 진리가 아니던가? 단지 사람들 눈에 잘 안 띄거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뿐이다. 무화과 꽃은 은화과(隱花果)라 부른다. 은은 숨는다는 뜻으로 무화과나무는 꽃이 없는 게 아니라 꽃이 숨어 피는 열매라는 뜻이다. 봄이 되면 무화과나무의 잎겨드랑이에서는 동그란 꽃턱이 돋아난다. 꽃턱은 화탁(花托)이라고 부르는 속씨식물 꽃의 한 부분으로 꽃자루의 맨 끝, 즉 일반적으로 꽃잎이 돋아나는 부분의 볼록한 부분을 지칭하는 말이다. 꽃의 다른 부분이 바로 이 꽃턱 안에서 숨어서 피어난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기 좋은 단어가 꽃턱이란 말 대신 꽃주머니란 말 일 것이다. 이 꽃턱 맨 끝부분의 아주 작은 구멍을 뚫고 들락거리며 꽃가루받이를 해주는 곤충이 있으니 바로 무화과 좀벌이라는 작은 날벌레다. 무화과 꽃이 품고 있는 풍성한 꿀이 목표지만. 그렇게 힘들게 꽃가루받이를 마치면, 깨알 같은 씨가 과육 속에 생기면서 꽃턱은 처음보다 조금 더 큰 형태로 익어가면서 차츰 색깔도 자주색이나 황록색으로 바뀌어 8,9월 결실 때에는 거의 달걀크기 정도로 먹음직스런 과일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이 꽃이 피는 것을 보지도 못했는데 어느 날 열매가 익기 때문에 그만 꽃이 없는 과일로 알려지고 만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무화과 열매 한 알만 먹어도 수백송이 꽃을 먹는 셈이 되는 것이다. 무화과는 올리브처럼 고대 유럽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심지어 성서에는 약 60회 이상 등장하는 나무이다. 바티칸의 성시스타나 예배당천장에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프레스코화가 있다. 원죄를 저지른 아담과 이브의 모습이다. 이들이 금단의 열매를 먹고 자신들의 원죄를 깨닫게 되면서 알몸을 가린 것이 바로 초록빛 무화과 잎이었다. 우스개 소리로 무화과 잎은 마치 남성 성기를 닮았다고들 한다. 구약성서 ‘열왕기’에는 평화와 번영, ‘신명기’에는 축복의 나무로 등장하지만 신약성서 ‘마태복음’에는 예수가 저주한 나무로 등장한다. 물론 비유겠지만, 이렇듯이 무화과나무는 평화와 번영, 축복, 낙원의 상징이었던 것인데 아담과 이브가 이것을 깨뜨린 것이라 하여 평화이자 원죄를 동시에 의미하게 되었다. 코오란 에도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 무화과나무에 걸어서”라는 귀절에서와 같이 무화과나무가 등장한다. 로마에서는 술의 신 바카스가 무화과나무에게 열매가 많이 열리는 방법을 알려 주어 무화과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더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전설도 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의 꽃말을 ‘다산(多産)’, ‘풍부함’이라 했을까? 무화과는 밀보다도 오래된 지구 역사상 가장 오랜 세월에 걸쳐 존재하는 나무이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백악기 때부터 살아온 식물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건과(乾果)로 이용했다. 당시에도 중요한 먹거리로 취급되어온 기록이 있으니 오랜 세월동안 인간의 곁에서 영양을 지켜온 셈이다. 신선이 먹는다고 하는 장생불사의 영약인 선단(仙丹)의 나무 또는 생명의 나무라 칭하며 인간과는 오랜 역사를 함께 하고 있다. 아라비아 서부 및 지중해 연안이 고향이고, 중동지역에서 예로부터 재배했다. 유럽을 비롯한 동양권에서도 널리 심어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남해안의 따뜻한 지역에 주로 자라고 있다. 특히 전남 영암군에서는 국내 총생산량의 2/3이상을 생산한다고 한다. 무화과는 과일의 귀족으로 불릴 정도로 맛도 영양도 귀하다. 옛날에는 임금님의 수라상에 오를 만큼 귀한 과일이었다. 무화과는 ‘3항(抗)’, ‘3협(協)’의 효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3항은 항산화, 항균, 항염증 효능을 말하고 3협은 소화촉진, 변비탈출, 심혈관 질환 예방 등을 뜻한다. 이밖에도 비만 예방과 여성의 갱년기 증상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미인의 대명사 클레오파트라가 무화과를 즐겨 먹으며 젊음을 유지했다고 하며 최근에 특히 중성지방을 제거해주어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는 연구보고도 나왔다. 로마 검투사들의 스테미너 식품이기도 하였다. 열매 속에는 단백질의 분해효소가 많이 들어 있어서 육식 후에 먹으면 소화가 잘 된다고 하니 육고기집의 후식용 과일로도 적격일 듯하다. 무화과나무에 가까운 것으로 ‘천선과(天仙果)나무’가 있는데 통영 거제등 남쪽 섬자락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재래종 무화과나무란 뜻에서 산무화과라 말하기도 한다. 열매가 꼭 무화과나무를 닮았으나 구슬정도로 작다. 누군가에게는 꽃이 전부이고 누군가에게는 열매가 전부일지라도 무화과 나무는 꽃과 열매가 하나 되는 이심전심(以心傳心), 물아일여(物我一如), 범아일여(汎我一如)의 경지를 꿈꾸고 있는 듯하다. 너와 나의 경계, 흑백의 경계, 빈부의 경계, 동서양의 경계, 미추의 경계, 생과사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것이 곧 우리들이 소망하는 세상이라는 듯 오늘도 넓고 푸른 잎 바람결에 맡겨두고 하늘하늘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설하고 있다. “석녀(石女)라 한다 / 애닮고 간절하여 / 눈귀입 닫고 피맺히게 / 몸속으로 몸속으로만 꽃을 피우던 시간들, / 당신의 하늘빛 가슴을 주옵소서 / 잉태하오리다 잉태하오리다 / 태초에 말씀이 있었더라 / 그 말씀이 곧 꽃이 되고 / 그 꽃이 드디어 생명의 열매가 되었느니라 / 엄마 품에 고이 잠든 / 고운 별 아가였더이다”. (필자의 졸시 ‘무화과’)

- 운형 최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