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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2-08 14:25
< 사랑도 음악도 다정도 병이련가? >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3,422  
 
 
사랑도 음악도 다정도 병이련가?
 
 
“인간 관계에서 너무 많은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실망을 주고
 
너무 많은 관심이 집착을 낳고 너무 많은 간섭이 관계를 멀어지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과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매화는 반만 피었을 때가 보기 좋고 벚꽃은 활짝 피었을 때가 볼 만하고
 
복사꽃은 멀리서 바라볼 때가 환상적이고 배꽃은 가까이 봐야 꽃의 자태를 알 수 있다.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사람 관계도 엉켜있으면 시들해진다.
 
때론 적당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있어야한다.” 통영 미래사에도 좌정하셨던
 
법정스님의 말씀이다.
 
곁에 있으나 떨어져 있으나 그리움의 물결이 출렁거리려면, 마주침과 스치고 지나침에
 
황홀의 메아리가 있으려면, 생명의 환희가 더욱 새록새록 피어나는 만남이 되려면,
 
시간 공간 거리의 조절이 인위적으로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는 법은 어쩌면 과하지 않은 감정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것들이 운동학에서는 탄력이고 중심 유지력 즉 균형 유지력이라 하며
 
자연의학에서는 자연치유력에 해당되는 것이다.
 
사랑과 우정의 요령은 적당히 가까워 졌다가 적당히 멀어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
 
너무 가까워지게 되면 공간이 줄어들어 서로의 자유로움을 침해하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멀어짐을 통해 만남의 휴식을 얻는다. 그리고 다시 그리워지면 만난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의 법칙이다. 지붕은 기둥이 너무 가까울
 
때나 너무 멀어질 때 무너진다. 탄력이 유지될 수 있는 한계가 있으니 그 범위 내에서
 
자유로운 변화를 적절히 구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 떨어지는 것은 신비성을 높여 서로 만날 수 있는 사랑의 에너지를 창조하는 것이며
 
조금씩 다가서는 과정의 섬세한 느낌들이 곧 사랑의 기쁨인 것이다.
 
쓸쓸함도, 홀로임도 에너지이다. 너무 말하여 너무 많이 드러내지 않는 것도
 
신비성의 비축이다. 떠나 있어보자 공간이 멀어질수록 큰 에너지이다.
 
예전 사대부 집안에서는 부부도 각 별실을 썼다 하는데 이런 연유가 아닐까?
 
현대인들은 너무 밀착되어 있다. 전쟁터에서 몸에 박힌 파편을 평생 몸에 담고 살다보니
 
어느덧 그 진통도 잘 모를 정도로 파편도 자신의 몸과 익숙해져 있더라는 말이 있다.
 
“밥통 속의 밥 풀 들은 / 모습을 잃고 풀린 채 / 틈도 없이 몸 전체로 엉켜 있습니다. /
 
끝내 지겨움이 생겨나고 맙니다 // 뒤주 속 쌀 알 들은 한 톨 한 톨 / 제 몸을 타원형으로 지킨 채 / 몸을
 
정결하게 최소로 이어 / 서로의 사이를 유지 합니다”
 
(박해조 님의 ‘친한사이’ 중)
 
 
우리는 밥통 속에 밥풀처럼이 아니라 뒤주 속 쌀알처럼 있어야 되리라 봅니다. 그러므로
 
고갈되지 않는 사랑에너지의 비축을 위해서는 깊이 가까워진 만큼 넓게 멀어지는 고등한
 
문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요즘 항간에는 연인 관계였던 남녀가 헤어지고 나서 서로 원수
 
처럼 되고 더욱이 흉악범죄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랑과 우정은 집착이 되고 집착은 소유욕으로, 소유욕은 범죄로 이어지는 기현상이 생긴것이다.
 
인간사뿐만 아니라 음악도 그러하리라. 이 세상에 과하게 들어도 피로감이 찾아오지 않는 음악이 얼마나
 
될까? 이런 면에서 모든 세상사는 과유불급이 적용된다 하겠다.
 
좋아하는 음악도 반복해서 듣다보면 언젠가는 그 곡이 지겨워지게 되고 때로는 시들해지고
 
덤덤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질리기까지 한다.
 
물론 음악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질리는 음악도 있고 반복해서 들어도 쉽게 질리지 않고 오히려
 
더 친숙해지는 음악도 때론 있겠으나 역시 과한 것은 덜한 것만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주도 어느 특
 
정한 곡을 가지고 수없이 하다보면 때로는 물리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잠시 휴식하거나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다가 돌아오면 다시 회복이 되는 경우를 왕왕 경험한다.
 
역설적이지만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곧 연주하지 않는 것, 음악을 듣는 것이 음악을 듣지 않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곡이 맘에 와 닿는다면 줄기차게 그 음악만 되풀이해서 듣는 것 보다는 좀 참고 아껴서 들을 줄도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음식도 맛있는 건 한꺼번에 다 먹기보다는 조금씩 아껴 먹듯이. 그래야만 그 곡
 
도 더 오래 좋아하게 되고 들을 때마다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게 되리라.
 
그런 면에서 음악과의 적당한 밀당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칼릴 지브란)
 
 
음악도 사람간의 관계도 지나친 다정多情은 병이 되련 가?
 
 
 
- 2018. 12. 운형 최진태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