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입대를 앞둔 채식주의자들이 “군대에서 채식선택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양심의 자유와 건강권 침해”라며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는 최근 신문기사가 눈길을 끈다. 까라면 까야 하는 것이 군대의 율법인데,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 대부분인 것 같다. 이들의 주장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이 기사는 지금 우리 사회의 중요한 트렌드로 읽히는 채식문화의 확산이 어디까지 가느냐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이제 채식은 소수 산중 수행자의 먹거리가 아니라, 심지어는 군대에서도 권리로 주장되는 음식문화가 되었다.
흔히 사람의 생존에 꼭 필요한 조건을 통틀어 우리는 의식주라고 하지만, 중국 사람은 의식주 대신 ‘식의주(食衣住)’라는 말을 쓴다고 들었다. 이 말이 본래 한자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식의주가 우리 문화에서는 의식주로 변용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인도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먹는 대로 생각한다는 사고방식도 뿌리 깊다. 우리 통념으로는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돼지고기를 먹으면 돼지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입는 것 못잖게 먹는 데 관심이 많다. 이전에는 먹는 것이 생존에 관한 문제였다면, 지금은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이전에는 어떻게 기근을 피하고 살아남을 것인가가 관심사였다면,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가 관심사다. 기근에서 자유로워진 덕분에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선택이 가능해졌다. 특히 지난 20여 년 동안 웰빙과 힐링시대를 건너면서 우리 사회에 채식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먹는 것이 ‘주어지는 대로’가 아니라 선택 가능한 일이 되었을 때, 대개 육식보다는 채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채식문화의 전형으로 꼽히는 힌두교나 불교 음식문화가 그렇다. 이미 5세기 후 인도 사회에서 채식은 최고급 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본래 유목민이었던 인도 아리안에게 주식은 육식이었다. 마찬가지로 초기불교에서도 육식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시 출가자의 식사에서 기본은 ‘발우에 담기는 대로’였기 때문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다 사원경제가 시작되고 음식을 가려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채식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문화는 불가역적’이라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 가능한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또한 이전에 비하여 힌두교나 우리나라 불교에서 육식 금지 전통이 다소 느슨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대놓고 채식보다 육식이 더 좋다고 말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채식이 강조되던 문화가 다시 육식 중심 음식문화로 되돌아 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말이다.
왜 채식인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채식이 강조되는 것은 대개 신체적 건강 또는 힐링과 관련된다. 이에 비해 이전부터 불교나 요가 전통에서 채식의 강조는 오히려 마음의 문제와 관련된다. 불교에서는 불살생계와 관련해 육식은 옳지 않다고 보았다. 불살생계를 서원한 수행자로서 육식을 한다는 것은 짐승 도살을 부추기는 윤리적 책임이 있기에 육식은 피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요가 전통에서는 이에 더하여 육식 자체가 마음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상추를 먹는 것이나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나 다른 생명을 거둔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의식의 강도라는 점에서 볼 때 돼지고기보다는 상추가 낫다는 것이다. 상추를 먹었을 때 상추처럼 생각할 가능성보다는 돼지고기를 먹었을 때 돼지처럼 생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왜냐? 식물에 비해 동물의 의식이 훨씬 강력하며, 따라서 식물보다 동물을 먹었을 때 그것이 사람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먹을 것인가? 불교든 요가든 한결같은 대답은 ‘소식(小食)’이다. 지금도 인도나 남방불교 출가수행자에게는 하루 한 끼 식사가 기본이다. ‘적게 먹는 것보다 좋은 약은 없다’. 내가 인도 수행처에서 한 철 나고 돌아오는 길에 늘 되뇌는 원(願)이자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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