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다. 우리는 지금 너무 빨리 달리고 있다. 속도주의를 넘어 가속도주의에 빠져 있다. 일본의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쓰지 신이치의 〈슬로우 이즈 뷰티풀(느린 것이 아름답다)〉이라는 책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패스트증후군이 만연해 있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강하게’가 현대인의 미덕이 되었고, 신념이 되었다. ‘더 작게, 더 느리게, 더 부드럽게’는 추방되어야 할 악덕이 되었다. 바쁜 것이 좋은 것이고, 한가한 것은 나쁜 것이 되었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인생이 그만큼 풍요로워졌는가. 지는 노을을, 밤하늘의 별을,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을, 단풍이 물드는 숲을 보지 못하고 삭막한 감수성에 남은 건 일에 찌든 몸만큼이나 찌든 사회가 아닌가.

한 곳과 한 곳의 가장 짧은 것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곧바로 가지 말고, 에둘러 가야 한다. 공자의 말이다. 지름길로 가지 마라. 인생도 굴곡(屈曲)이 있기 마련 아닌가.

느림은 쉼이며, 휴식이다. 쉴 휴(休)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묵힘이고 삭힘이다. 느림은 따뜻하고, 속도는 차갑다. 느림은 침묵이고, 속도는 말이다. 말은 빨리 배우지만, 침묵은 늦게 배운다. 말을 배우는 데 3년이 걸리고, 침묵을 배우는 데 30년이 걸린다. 차가운 말로써 어찌 나의 따뜻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겠는가. 느림은 고독과 반성과 은둔과 명상의 시간이다. 느림은 복잡함이 아니라 단순함이며,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다.

느림은 틈이고 거리이고, 여백이고 여유이다. 느림은 용서이고 자비이며 사랑이다. 속도는 화냄이며 힘자랑이다. 느림은 버림이고, 비움이다. 속도는 욕망이며 소유이다. 느림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이며, 속도는 분주한 한낮의 나라이다. 느림은 연대와 협력이고, 속도는 경쟁과 분열이다.

느림은 겸손과 외경이고, 속도는 오만과 남용이다. 느림은 자유이고 평화이며, 속도는 경쟁이며 전쟁이다. 자신의 내면이 평화롭고 자유스러운 사람만이 남들과 자기 자신에게 관대할 수 있는 법이다. 사랑과 우정을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느림이다. 사랑은 정말 더딘 것이고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쉽게 온 것은 쉽게 사라지고 급하게 만들어진 것은 급하게 사라진다. 그리고 좋은 일은 천천히 이루어진다.

느림은 단식이고, 속도는 과식이다. 정보단식도 필요하다. 책과 음악까지도 끊고, 일체의 의사소통도 끊고, 자연이 주는 정보만을 받는다. 지금 다들 정보비만증에 걸려 있다. 정보다이어트를 통해 정보의 숙변을 제거해야 한다. 속도와 정보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느리게 살기 운동이 필요하다. 사티쉬 쿠마르의 말이다. 시간은 무한한데 바삐 서둘러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 이전에 자전거를 타고 누가 늦게 가느냐는 경주를 본 적이 있다.

피에르 상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느리게 사는 지혜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것, 신뢰할 만한 다른 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무의미할 때까지 반복되는 것을 받아들일 것, 꿈을 꿀 것, 기다릴 것 등을 들고 있다. 그리고 한가로이 거닐기를 제안한다. 한가로이 거니는 것은 시간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쫓겨 몰리는 법 없이 오히려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쓰지 신이치도 느린 삶의 첫걸음이 산책을 되찾는 일이라고 한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곧게 뻗은 길을 버리고, 샛길로 들어가 멀리 돌아가면서 이것저것 살펴보는 것이라 하였다.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래서 불안한 것이다. 생태계 파괴와 심각한 이상기후가 확실할 뿐이고, 고령화 사회가 온다는 것도 확실할 뿐이다. 빨리 가 본들 그것들과 만날 뿐이다. 많은 미래학자가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자연의 변화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하고 있다.

앨빈 토플러는 〈권력이동〉에서 문명사는 빠른 것과 느린 것의 대결이었고, 빠른 것의 승리로 끝났다고 하였다. 밀란 쿤데라는 자본주의와 느림은 상극이라고 한다. 자본주의에서 느리게 가면 패배자가 될 것인데, 그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우주의 지름은 일천억 광년이다. 빨리 가 본들 어디까지 가겠는가. 힘들지만 빠른 속도에 저항해야 한다.
느린 것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