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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4-21 19:01
<해탈의 자세 (파반문타아사나)>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2,097  
♡해탈의 자세 (파반묵타아사나)
ㅡ최진태의 요가로 세상읽기(108)

파반묵타 아사나는 일명 해탈의 자세, 바람빼기 자세, 방귀 자세, 가스제거 자세라고도 한다. 파반(pavan)은 가스, 독소, 바람, 공기를 뜻하고 묵타(mukta)는 해탈, 해방, 제거, 방출을 의미한다.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자세에서 두 무릎을 세워 깍지 끼고 손으로 무릎을 감싸 안은 후 허벅지를 몸통 쪽으로 끌어당기며 머리를 들어 무릎 가까이 턱이 닿도록 한다. 자연스럽게 숨을 쉰 후 이 자세를 유지한다. 양발을 바닥에 내려놓았다가 다시 양손으로 한쪽 무릎씩 천천히 끌어당기며 복부의 자극에 집중하다가 서서히 처음 자세로 돌아간다. 복부기관을 자극함으로써 장의 연동 운동을 돕고 뱃속의 가스를 해소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소화불량, 가스, 트림, 변비, 대장염 등 소화기 질환에 유효하다. 류머티즘 해소와 비만에도 효과적인 자세이다.(자세 시연 황두현)
해탈이란 말은 불교에서는 인간의 속세적 또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상태, 즉 인간의 근본적 아집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탐욕, 분노, 어리석음 등의 번뇌 또는 과거의 법에 속박되어 있으며 이로부터의 해방이 곧 구원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구원은 타율적으로 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혜, 즉 반야(般若)를 증득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는데 특징이 있다.
결국 번뇌의 속박을 떠나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벗어나 무애자재(無碍自在)의 깨달음을 얻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원래 인도 바라문교에서 사용하던 말이었으나 후에 불교 등에 도입되었다. 불교에서의 해탈은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궁극적인 경지로 업과 윤회를 벗어난 상태를 일컫는다. 역사적으로 해탈에 대한 사고방식은 윤회사상의 탄생과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윤회는 마치 수레바퀴가 굴러서 끝이 없는 것과 같이 인간의 번뇌와 업에 따라 생사의 세계를 거듭하여 그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해탈은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 열반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열반(nirvana)는 원래 ‘불어 끈다’ 는 뜻을 가진 말로 불교에서는 탐(貪)ㆍ 진ㆍ 치(痴)의 세 가지 독심(毒心)을 끊고 고요해진 평정의 경지를 뜻하는데 깨달음을 얻어 해탈한 마음은 번뇌의 불꽃이 사그라진 재와 같아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하게 된다고 본다. 앞서 설명했듯이 불교에서는 번뇌가 없어진 상태를 열반이라고 하는바 결국 해탈은 열반을 동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열반은 해탈의 정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경지 자체를 볼 때 해탈과 열반은 같은 것의 서로 다른 표현이라 할 것이다.
인도 고전인 우파니샤드에서의 윤회와 업은 단순히 맹목적인 반복이 아니라 그 궁극 목표는 해탈이다. 해탈이란 그 어느 곳에도 얽매이지 않고 완전히 자유롭고 완전히 행복한 어쩌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고 많은 수행자들이 도달하기를 갈망하는 이상향일지도 모를 일이다.
파반묵타와는 또 다른 의미의 지반묵타는 육체를 가진 동안 해방을 성취한 영혼을 일컫는 말이다. 세상에 남아 있으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고 이러한 빛나는 영혼은 근심하지도 슬퍼하지도 않고,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 자유를 성취한 자의 상태를 일러 지반묵타라고 일컫는다. “의식의 고통 속에서도 근심으로 동요되지 않고 좋은 환경 속에서도 행복에 대한 애착으로 흔들림이 없는 자, 세속적인 사랑과 공포와 분노에서 자유로운 자, 그가 변하지 않는 식별력을 지닌 무니(muni, 스스로의 마음을 신 神 안에 녹일 수 있는 자)이다” (바가바드 기타 2 : 56)
한편 칼융은 “마음을 본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를 해방(해탈)하는 것이며, 무의식(마음)의 작용에 관심을 기울일수록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분리시키는 욕망의 세계로부터 우리가 벗어나게 되는데 이것은 투쟁과 고난에 묶인 상태에서 참으로 벗어나 자신을 해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한다. ‘티벳 해탈의 서(書)에서는 “요가의 목표는 윤회에서 깨어나 열반에 이르는 것이며, (그와 동시에 찾아오는) 윤회와 열반이 하나임에 대한 지고의 깨달음인 바, 이것이 바로 위대한 해방을 달성하는 일이다. 모든 존재의 영원한 의지 처인 열반, 이 열반의 체험은 세속적인 마음을 초 세속적인 마음으로 바꾸는 요가에 의해 얻어진다. 그 과정은 첫 번째로 공부하여 신성한 지혜를 지적으로 이해하는 일이고, 두 번째는 직관적 통찰력을 얻는 일이며, 세 번째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와 마주하는 일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파반묵타 아사나를 통하여 혹, 해탈의 문에 들어서 볼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감(?)으로 설레어지는 시간이다. 아님 너무 앞서 갔다면 그 해탈에 대해 일고(一考)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라 생각된다.

-운형 최 진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