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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4-28 20:11
<갠지즈, 죽음보다 깊은 강>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2,165  


♡갠지스, 죽음보다 깊은 강
/글 석류정 님

삶보다 죽음이 더 많은 곳, 살아있는 사람은 죽음을 경험하고 죽은 사람은 다시 태어나는 곳, 그러나 통곡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그저 쉼 없이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하루의 태양이 푸자의 종소리와 함께 저물어 가면 어제의 별은 또 다시 살아 오른다.

나는 오늘 또 하나의 죽음을 만났다. 커튼만 젖혀도 쉽게 모든 의식을 볼 수 있는 숙소에서 노란 천으로 덥힌 죽음을 보는 순간, 내가 보았던 숱한 죽음과 또 다른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았다. 시신을 덮은 노란 천은 여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그 여자는 배가 불러있었다. 나일론 천의 가운데가 불룩 튀어나왔는데 제법 높이가 있었다.

어린 아이의 죽음을 처음 본 것은 아니다. 임신한 여자의 죽음도 이미 몇 번 보았다. 시신의 크기 만 한 반듯한 돌 위에 시신을 놓고 코코넛 밧줄로 단단하게 묶은 다음 망자의 상주가 직접 강으로 던진다. 그리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서서 그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간다. 다 알고 있는 의식의 순서였지만 아무리 보아도 여전히 숙연해지는 것은 삶과 죽음이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일까?

대나무 들것에 실려 온 여자, 무엇으로 인해 세상을 저렇듯 일찍 하직했는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 나의 가슴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인연이다. 수만리 먼 나라에서 온 사내와 낯선 조우, 지금은 서로 다른 세상을 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 또한 무의식의 몸으로 산자들의 의식 속 주인공이 될 것이다. 지금은 내 비록 살아서 저토록 깊은 잠에 시선을 모으고 있지만......
정월의 차가운 바람 가운데 서서 얇은 하얀 천 하나로 몸을 감싼 사람은 의외로 젊었다. 차마 하고 싶지 않은 듯 자꾸만 의식된 행동을 멈추려했다. 갠지스 강물에 세신을 하는 첫 번 째 의식에서도 그는 서 있기만 했다. 그러자 의식을 이끄는 사람은 재촉을 한다. 할 수 없이 강물에 세 번 시신을 담그더니 이내 준비된 두껍고 평평한 돌 위에 시신을 뉘어 놓고 줄로 여러 번 감았다.

그렇게 돌에 매단 시신을 태운 작은 나룻배는 상주와 몇 사람만 태운 채 강 가운데로 천천히 노를 저어가고 이윽고 강 한 가운데 쯤 온 것을 확인하자 더 이상 생각할 이유도 없다는 듯이 강 속으로 던져졌다. 마치 귀찮은 물건을 내 버리듯......이렇게 이승과 저승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누가 죽음의 땅을 저 먼 곳이라고 말을 하겠는가? 두 갈래 철로처럼 한쪽의 길로만 존재할 수 없듯이 삶과 죽음은 동반자임에 틀림없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은 이렇듯 가까이 있었다. 그런 까닭일까? 아니면 또 다른 그 무엇이 저들의 가슴에 있는 이유일까? 하지만 나는 강물에 시신을 던져 놓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서 올 수 있는 저 순한 행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젊은 나이에 아내를 잃은 어떤 사내를 알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를 보낸 심정은 인간의 그 어떤 표현으로도 다 할 수 없다고 했다. 떠난 사람을 생각만 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목이 수시로 부어오르며 가슴이 쥐어짜는 통증으로 몇 해를 지내야만 했다는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갠지스 강의 죽음에서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정말로 죽음의 의식인지 의심이 갔다.
생각의 차이라고, 사고와 의식의 차이라고 단정하지만 쉽게 마음은 추스러지지 않는다. 그래도 죽음인데, 어디 외국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타국 먼 곳으로 시집보내는 것도 아닌데, 아주 긴 이별, 다시는 이 지상 어디에서도 만나볼 수 없는 마지막 인사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지만 정말 그랬다. 보내는 사람이 누구든, 떠난 사람이 누구든, 이곳 갠지스 강 죽음 앞에서는 통곡도 슬픔도 배어있지 않았다. 그저 시무룩하게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파묻고 가끔 고개를 들어 먼 강을 바라다보았던 젊은 아비의 표정이 내가 본 슬픔의 절정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우리 아들을 군대에 보낼 때 조치원역에서 손을 흔들어 주던 그 정도의 표정이었을까?
작별의 인사일수록 짧게 하라는 말처럼 이미 사람의 형체만 두르고 있는 주검 앞에서 굳이 서럽도록 울부짖는 일이 무슨 소용 있으랴마는 그 어떤 이성과 인내로도 이별의 비통함을 참아내기는 힘든 법. 도대체 저들의 심장은 무엇으로 만들어졌기에 저토록 이별의 슬픔을 잘도 참아내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해가 저물고 별이 수북이 살아 오른 후에야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이십 오 촉 백열전구 불빛 아래 삐걱거리는 침대가 내 숙소의 전부였다. 나를 불러주는 이도, 내가 부를 이름도 없다. -산다는 것은 외로운 거야.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삶이야- 똑 같은 말을 몇 번 뇌이며 커튼을 내렸다.